Q. 강달프란 별명은 어떻게 얻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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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가 한참일 때 시민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간달프라는 마법사가 등장하는데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간달프’와 내 이름의 ‘강’자를 붙여 ‘강달프’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참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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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간달프> |
<촛불의 친구 강달프> |
Q.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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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들 셋에 딸 하나, 큰 아들이 스무살이고 막내가 이제 초등학생입니다.
Q. 결혼을 언제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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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흔이 넘어서 결혼했습니다.
당시 농촌 총각 결혼 문제가 심각했고 저 또한 그 중 하나였습니다.
오죽 문제가 심각했으면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를 결성했겠습니까?
Q.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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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89년도에 미국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를 위해 광화문 미대사관에서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모두 연행되어 경찰서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침 모두들 장가를 못 간 농촌총각들이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 농촌총각 결혼문제가 결국 농촌문제의 총체적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어 구치소를 나온 후 바로 대책위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MBC뉴스]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 설립 1주년 맞아 세번째 결혼식(이진숙 기자)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5521_6082.html
Q. 결혼대책위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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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말 그대로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 중매를 서서 농촌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쌍 한 쌍 결혼을 성사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저 또한 그 활동을 하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Q. 몇 쌍이나 결혼에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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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00쌍 이상이 부부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결혼한 부부와 가끔 만나고 있습니다.
Q. 지금도 농촌 결혼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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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농촌이 살기 좋다면 왜 농촌 총각이 결혼하기 힘들겠습니까?
도시와 농촌 간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혼문제도 해결할 방안이 없는 것이지요.
제가 농촌총각결혼대책위 활동을 시작한 것이 1980년대 후반입니다.
여전히 농촌은 살기 팍팍하고 힘들죠.
요새도 다시 농촌총각결혼대책위 활동을 재개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도 됩니다.
그때만 해도 외국에서 신부를 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농촌에서 국제결혼이 늘어나 다문화가정이 많아졌는데, 이들이 한국 사회에 잘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도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Q. 수염은 언제부터 기르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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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농촌총각결혼대책위 할 때 한 쌍이라도 결혼을 시키지 못하면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지금까지 기르게 되었습니다.
수염을 기른 모습이 '예수님'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울 뿐이죠^^
Q. 막내가 초등학생이면 아버지를 어려워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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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막내가 저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제가 국회로 들어올 때 한 살이었으니 곁에서 자라는 모습을 많이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고 녀석을 보면 마음이 항상 짠~합니다. 예전에는 집에 내려가 말타기를 많이 해 줬고, 요즘은 주로 냉온욕으로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중앙SUNDAY] 아빠만 보면 도망가던 아들, 호랑이 놀이로 마음 열어
'투사' 강기갑이 한없이 여려질 때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9718
Q. 정치를 하기 전에 농사를 지은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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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금은 농사의 대부분을 아내가 하고 있습니다.
사천에 매실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 넷을 키우며 농사짓기기 만만치 않습니다.
틈나는 대로 내려가 돕고는 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빚만 늘어가고 힘들게 일하는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Q. 빚이라니? 국회의원 세비가 한 달에 천만원이 넘는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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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월 최고 230만원만 받고 나머지 세비는 특별당비로 당에 납부합니다.
2011년 들어오면서 270만원으로 인상되어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아질 것 같습니다.
농사도 못 짓는데 아이 넷을 키우며 살림을 하자니 빠듯하기만 합니다.
스스로 서민이고 농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입장도 늘 서민 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빚이 얼마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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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도 다른 농민처럼 농협에만 빚이 5억 가까이 있습니다.
농장에 시설투자하고 정비하느라 늘어난 빚인데 갚기는커녕 매년 늘어나기만 합니다.
걱정은 되지만 땅 농사 못지않게 정치농사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것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Q. 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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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농촌에서는 초등학교 다닐 대부터 농사를 돕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일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도 타고난 농사꾼이었고, 형님도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농사를 제 천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정치는 지나가는 인연이고, 농사는 평생 인연이지요.
지금도 흙을 만지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Q. 두루마기와 고무신을 벗지 않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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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복은 항상 다려입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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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렇습니다.
두루마기 다림질 하는 데만 한 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다림질을 하고 옷차림을 두루 걸치는데 공을 들이며 스스로 마음도 닦습니다.
이제 다림질은 수준급입니다^^
Q. 한복이 수 백만원을 웃돈다는 소문이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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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 백만원이나 하는 옷을 입고 다닐 형편이 안됩니다.
지금 입는 한복은 2004년 국회 들어올 때부터 입던 것입니다.
그 중 겨울 두루마기는 7-8년 동안 겨울내내 입고 다녀 닳고 닳아 보기에 안 좋다고 하여 얼마 전에 닳은 소매와 앞섶만 고쳐서 입고 있습니다.
두 세 벌로 한 계절을 나고 있습니다
Q. 두루마기를 벗고 공식성상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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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도포를 벗었는데, 한 번은 2008년 총선 때 경상대 앞에서 청바지와 와이셔츠를 입고 선거유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2011년 3월 진주역에서 일일역장 체험을 하느라 역무원 모자와 제복을 입은 것입니다.
산타옷을 입고 거리에서 선전전을 한 적도 있습니다.
국민들이 한복 입은 모습만 보시다가 다른 옷을 입은 모습을 보면 흥미로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Q. 농사지을 때도 두루마기를 입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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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농사지을 때는 당연히 작업복을 입습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두루마기를 훌훌 벗고 다닐 때도 많습니다.
아내와 함께 여행할 때 캐주얼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 적이 있는데 아내가 무척 좋아하군요.
사진은 아내 요청으로 비공개입니다^^
아내가 동의만 해주면 언제든 보여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Q. 인터넷과 SNS 활용을 잘 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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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복을 입고 다니다보니 왠지 고루하고 보수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정치인 중에도 트위터를 비교적 빨리 한 편에 속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직까지 저와 트친이 아니시면 지금 바로 연락주십시오.
트위터 :
http://www.twitter.com/kanggigap
페이스북 '강달프가 간다' :
http://www.facebook.com/kanggigap
Q. 언제부터 트윗을 하기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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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9년 초에 처음 트윗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어떻게 올리는지 어떤 글을 써야할지, 사진을 어떻게 올리는지 몰라 많이 헤매기도 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새로 익혀 잘 쓰고 있습니다.
2010년 7월에는 트윗 팔로어들과 팔로어 1만명 돌파 기념으로 사천에 있는 매실 농장으로 모꼬지를 간 적도 있습니다.
2011년에는 3만명이 넘었는데 이를 통해 더욱 많은 분들과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
Q. 팔로어들과 번개 모임도 자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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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주는 못합니다.
2010년에 한 번 광화문 근처에서 번개모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월요일이었는데 당일 번개를 공지했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셨습니다.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분들을 직접 만나니 참 반갑웠습니다.
트윗을 포함한 SNS의 장점은 바로 소통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매력에 빠져 트윗과 페이스북을 합니다.
초반에 트윗을 할 때에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한 적도 있습니다.
Q. 종교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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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톨릭 신자입니다.
세례명은 로베르또입니다.
농민운동을 하다가 7년간 수사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형제가 4남 4녀 8남매인데 넷째 누님이 수녀님이십니다.
누님을 통해 종교를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국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제 삶의 중심이며, 그 신앙의 핵심은 사랑, 즉 상생입니다.
처음 국회의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꼭 한 시간씩 묵상을 하고 매일 미사 책으로 그날의 말씀을 읽으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신앙으로 정치하는 농민예언자 강기갑 의원
http://www.na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279
Q. 여러차례 단식을 한 것으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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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소수 정당 국회의원이다 보니 국민의 뜻과 국회가 반대로 갈 때, 단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정부 여당을 설득하고 비판하는데 단식이라는 방법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Q. 농사만 짓고, 농민 운동하던 분이 정치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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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실수도 많았습니다. 오직 정의로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배우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제 기술과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을 읽고 실현하고자 하는 진정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민중에 대한, 전 국민에 대한 간절함을 간직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Q. 2008년 사천에서의 당선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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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상도에서 민주당도 아닌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은 일입니다.
당시 한나라당 실세인 이방호 전 의원을 상대로 178표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선거 당일만 해도 아무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선거운동을 했고, 결과는 하늘이 주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다만 후회가 없도록 한 점 남김없이 온 힘을 불태웠을 뿐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임했고 순간순간에 얼마나 최선을 다 하느냐에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뛰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다고 믿고 쳤더니, 바위가 '쩍'하고 갈라진 것입니다.
정치가 선거 때만 서민 찾고 늘 가진자들을 위한 잔치판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판을 뒤집기 위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MBC PD수첩] 농민 강기갑, 다시 국회로 가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vod/index.html?kind=image&progCode=1000836100351100000&pageNum=1&pageSize=5&cornerFlag=1&ContentTypeID=1&ProgramGroupID=0
Q. 국민이 정치에 갖는 실망과 불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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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제치하를 거쳐 독재와 권위주의에 물든 정치권의 모습,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인과 정치에 대해 당연히 국민이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국민 탓이 아닙니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국민에게 정치가 희망이 되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치가 꿈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저를 포함한 정치인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는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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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생은 우주 만물의 진리이고 섭리입니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상생의 정치'입니다.
이것이 평화이고, 평등이고, 민주주의입니다.
이것을 정치, 경제, 남북관계, 국제정세 등 모든 분야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면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정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Q. '공중부양' 사진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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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9년 언론재벌의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투쟁 당시 한 언론사 기자가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항의하던 내 모습을 찍어 공중부양이라 했습니다.
당시 저는 당대표를 맡고 있었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함께 미디어법 반대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이미 농성을 풀었고 민주노동당도 의원단 회의를 통해 농성을 이어가야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였습니다.
미디어법을 비롯한 MB악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김형오 국회의장과 박계동 사무총장이 무리하게 소수정당을 탄압한 결과 일어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어쨌든 폭력을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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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폭력과 평화로 해결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이것이 소수정당이 가진 비애라고 봅니다.
서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어야 할 국회에서 소수정당 의견은 묵살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몸으로 부딪치게 되고, 현상만을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그 폭력성이 부각되곤 했습니다.
이 '폭력'과 '강경' 이미지는 저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에도 덧씌워 있는 멍에 같은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주노동당이 하루빨리 힘을 키워
원내교섭단체가 되고 수권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의원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언론에 비친 모습만으로
보면 강의원님께서 한복을 입지 않으셨으면 좋겟습니다
문제가 되는 화면이나 지면마다 한복을 입고 뛰시고 망치들고 하셔서
어린이나 중고생,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한복의 이미지가 훼손될까 두렵습니다
한복입은 사람들은 다 저런모양이다
예전에 학교에서도 민속연구반 아이들이 강성이었던적이 있고요
제발 앞으로 강성 강기갑을 표현하실땐 한복을 벗고 양복을 입으시던지 기모노를 입으시던지
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한복입고 그러는 모습 다신 안봤으면 합니다